나중에 나이가 들고 나서 어머니의 교육방법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다른 사람들에게 비판받을 때 “너를 믿는다”며 격려해 주신 분도 어머니였습니다.
배운 것 없는 어머니였지만, 제게 딱 두 가지를 분명히 가르쳤습니다.
하나는 거짓말하면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용서 없이 회초리를 들었고,
둘째는 옳다고 생각하면 절대 굴복하지 않는 정신이었습니다.

각종 상금 덕에 근근히 졸업한 후 광주보병학교에서 장교훈련을 받고
최전방 철책 선에 소대장이 되었습니다.
소대장 된 지 3일 만인 1971년 7월 1일 새벽 0시 20분경,
저는 북한 무장공비를 사살하는 무공을 세웠습니다.
마침 그날은 박정희 대통령 취임식 날이었고
무장공비의 노획물에 대형 시한폭탄 3개가 있어 무공이 부풀려져
뜬금없이 영웅으로 묘사되고 훈장이 상신 되었습니다.

그러나 철없는 나이였지만,
거적을 아무렇게나 덮어 가매장 당한 북한 장교의 시신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나무를 깍아 십자가를 만들어 꽂아주고 소대원들을 데리고 가서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게 탈이었습니다. 빨갱이 장교로 몰려 조사를 받고 군법회의에 회부될 처지가 되었습니다.
영웅의 추락은 너무 가파랐습니다. 저는 잡혀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죽은 자는 흙이다. 적장이 죽었을 때 최소한의 조문의식을 갖는 것은 휴머니즘이라고...”
저는 말을 다 마치지 못한 채 군화발 아래 나 딩굴고 말았습니다.
어머니를 떠올리며 끝까지 제가 옳다고 주장했고 억울해서 탈영까지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 시절의 분위기를 어느 정도 용인 할 만큼 철이 들었습니다.
몇 번이나 그 시절 얘기를 글로 써보자고 다짐했건만
당사자들이 모두 살아있는 마당에 제 생각만 옳다고 주장하는 것을 피하고
나중에 제 자서전에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검열을 통해서만 글을 써야했고
온갖 협박과 공갈과 구속의 위협에 시달려야만 했습니다.
정치계?언론 ?재벌?교수?군대?의사?법조인?경찰?국세청?정보기관,
심지어 종교계까지 무차별 공격하고 거물급의 실명까지 거론했기 때문에
살아 있는 게 기적이라는 소리까지 들어야 했습니다.

저는 한때 가족을 데리고 유학 갈 궁리까지 했습니다.
심한 경우에 어린 자식들을 유괴하겠다는 협박의 공포에 떨었지요.
실제로 그때 시골에 숨겨둔 자식들이 유괴직전까지 가는 고비를 넘겼습니다.
오죽하면 아내가 얘들을 데리고 저와 상의 한마디 없이 도피하기까지 했겠습니까.
그 후로도 협박전화가 수없이 걸려와 가족들이 하루하루 불안 속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결국 아내는 심장병과 기관지확장증이라는 고통에 시달렸고 몸이 성치 못했습니다.
아이들 학교에 한 번도 가지 못해 학교에서 직접 확인하는 소동 끝에
환자어머니라는 판정을 받는 우여곡절도 겪었습니다.

고통에 연속이라는 걸 미루어 짐작하셨을 줄 압니다.
그때 어머니가 제게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걱정하는 아내와 어린 자식들 앞에서 말입니다.
“저 놈은 명대로 못살 놈이다. 모두 내 업보다.
천주님의 뜻이 그러하다면 사내놈은 죽을 줄도 알아야 한다.
네가 옳다면 죽는 길을 선택해라. 나도 따라 죽으마.”

90년대 들어서면서 시민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상임집행위원과
헌 것을 재활용하는 알뜰가게 이사장으로 일했습니다.
제가 정치를 그만두게 된다면 다시 시민운동을 할 생각을 할 만큼 애착이 많습니다.
사실 정치를 시작하게 된 것도 시민운동 대표로 그리 된 것입니다.

이런 일들이 계기가 되어 정치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정당에서 꾸준히 제의를 받았지만 거절해 왔는데
하루는 조계종 총무원장님이 불렀습니다.
경실련 서경석 목사하고 환경운동연합 최열 총장하고 셋이서 갔는데
“그렇게 뒷짐만 지고 있을 거냐?”고 호통을 치시는 겁니다.
정치판에도 참신한 젊은이들이 나서야 한다며
“머리 깍은 내가 하랴”하시는 통에 떠밀려 들어갔습니다.
개혁신당 만드는 것을 도와주러 갔다가 붙잡히고 말았지요.

처음엔 개혁신당과 민주당을 통합한 후 빠질 생각이었는데
통합이 되고 보니 홍보위원장 자리를 만들어 앉히더니 선거가 다가오자
대변인에 전국구 자리까지 맡겼습니다. 너무 깊숙이 들어와 되돌아 나갈 수도 없었지요.
상황이 그렇다 보니 좋은 점도 있었습니다.
‘인간시장’을 한창 쓰면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제도는 꼭 고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는데
국회의원이 되니 그 기회가 주어져 얄궂은 운명이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튀는 행동이 정작 빛을 발한 것은 국감 때다.
감사가 시작되기 40여 일 전부터 보좌진들과 함께 의원회관에서 밤샘작업을 하는 그는
‘하루에 한 건은 터트리자’는 원칙을 세워놓고 철저한 준비를 계획했다.
소설 쓰는 것이 그렇듯 치밀하지 못한 문제제기는 오히려 외면당하고 웃움거리가 될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소설 쓰는 기분으로 국감에 임했어요. ‘인간시장’의 소재를 찾기 위해 사회 구석구석에 기생하는 비리를 취재했던 것처럼 한번 잡은 꼬리는 끝까지 붙들고 매달렸습니다. 철저하게 취재해 빠져나갈 구멍을 미리 막아버리자는 작전이었습니다.”
그의 예상은 그대로 적중했다. 국감 내내 그는 굵직굵직한 사건을 하나씩 터트려 국감장(?)을 공포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언론들은 연일 그의 입을 따라가기도 바빴다.

「주간조선」은 302호 식구들을 사진과 함께 단독 기사로 다루었다.
‘이들 정책팀은 빌 게이츠식의 자유분방한 사고와 남다른 노력으로
의정활동의 새 모델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이들의 활동을 적고 있다.
「뉴스메이커」는 ‘나를 키우는 건 보좌진의 자유로운 활동’이라는 나의 멘트를 딴 제목으로,
중앙일보는 ‘뛰어난 의원 뒤엔 뛰는 보좌진 있었다’는 제목으로
우리 302호 식구들의 활동상을 보도했다.
특히 한겨레는 별지로 끼워져 나오는 ‘한겨례 2’의 1면 전체면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큰 사진과 함께 김서용 보좌진을 기획기사로 보도했다.

나는 이들의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느낀다.
그 아름다움은 국회의 외양에서 느끼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국회의 속내에서 느끼는 아름다움이다.
우리 국회가 늘상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유지할 수 없을까?
외양 뿐 아니라 속내까지도 아름다운 국회,
그래서 국민들로부터 아름답다는 말을 듣는 국회,
그것은 나의 꿈이자 우리 국민들의 꿈일 것이다.

아름다운 국회, 아름다운 사람들
나는 이들을 사랑하고, 이들이 그립다.

남편 직장(국회)에는 한번도 와 본 적이 없고
전화한 것은 딱 네 번, 급한 일 있을 때만 했습니다.
아내도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는 성격이 못되고
저 또한 아내가 남편 일에 얽매이는 것보다 자유롭게 행동하는 것이 더 좋았습니다.

처음 정치한다고 했을 때는 반대하다가 하는 일을 보더니
그래도 남편이 잘 한다고 생각했던지 응원을 보내더군요.
후원회 행사를 한다고 하니까, 정 어려우면 집을 줄이면 어떻겠냐고 해서
저를 감동시킨 착하고 조용한 여자였습니다.

인공호흡기 때문에 대꾸조차 못하고 눈빛으로만 표현하는 아내에게
대한민국의 정치 1번지 종로에서 출마해도 좋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아내는 허공을 한번 쳐다보더니 웃는 둥 마는 둥 웃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웃는 거라고 저 혼자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대학에서 강의하면서 늘
“인생은 일회용 휴지와 같다.
한번 쓰고 버리는 것이기에 살아있는 동안 행복하라”
고 강조했거늘 제발 나중에 후회하는 일을 줄이면서 살라 했거늘
말은 그리하면서 저 자신은 왜 그리 살지 못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찌 되었건 정치마당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더 새로운 정치, 더 깨끗한 정치, 더 신뢰받는 정치
그리고 정말 향기나는 정치를 하고 싶습니다.
그것만이 제가 꿈꾸던 ‘자유인’을 지향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것만이 마흔 아홉살을 채 채우지도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난
아내의 영전에 제가 진 빚을 갚는 길이겠지요.

“그의 첫 모습은 왜소합니다. 한국인의 평균 신장보다 10cm 정도 작은 그이기에 처음 대할 때는 여유있게 자신감을 가지고 접근하지만, 가까이서 대하는 그 사람은 육척 장신의 거인을 능가하는 풍모를 지니고 있어 자신이 왜소해짐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