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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303]SOFA, 왜 개정되어야 하는가?
첨부파일 : SOFA개정1.hwp (2003-03-12 14:42:13, 번호: 22, 조회: 4099)
[대교지편집위원회/손승현]

SOFA, 왜 개정되어야 하는가?

김 홍 신

우리나라에는 약 3만7천여명의 주한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독립적인 주권국가 내에서 다른 나라의 군대가 주둔한다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은 아니다. 이런 부자연스러움을 적절히 설명하기 위해선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만 한다.
분단 반세기동안의 대치국면에서 북한의 남침을 저지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요한 존재이유였다면 6.15남북공동선언과 한반도의 정세변화는 주한미군의 존재이유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게 한다. 주한미군이 계속 존재해야 하느냐, 철수해야 하느냐의 본질적인 문제에서부터 만약 계속 주둔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가 명확히 검증되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이다.

국제화의 시대에서 한 국가의 영락성쇠(榮落盛衰)는 단일국가 내의 내부적 문제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주변국가간, 넓게는 세계와의 교류와 흐름 속에서 결정된다. 세계와의 교류없이 독자 생존을 추구하는 나라도 없을 뿐만 아니라, 만일 그런 나라가 존재한다고 해도 결코 생존(?)에 성공한 예는 없다.
많은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는 주한미군과 SOFA도 이런 국제적인 흐름과 관계 속에서 새롭게 고민되어야 한다. 사회주의권의 몰락으로 인한 냉전질서의 해체와 평화무드에 조응할 수 있는 새로운 관계정립이 필요하다. 분단반세기를 지배해왔던 대립과 갈등을 해소하고 한반도평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새로운 존재양식과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1. 한반도의 외국군 주둔의 역사

사실 미군과 SOFA의 문제는 단순한 협정의 의미를 넘어선 우리 민족이 해결해야할 현대사의 숙제이기도 하다.
한반도는 19세기 말부터 제국주의 국가들의 이권다툼의 장이었다. 한반도에 외국군이 주둔하기 시작한 것도 제국주의적 야욕에 근거한 청·일 간의 대립으로부터 시작되었다. 1882년 임오군란을 기점으로 청의 오장경부대 3,000명이 서울과 수원에 주둔하기 시작했다. 조선의 심장부에 자국군을 배치한 청나라는 흥선대원군을 중국으로 납치하고, 조선군대를 청나라식으로 개편하는 등 조선에 대한 제국주의적 지배를 시도했다. 우리 근대화의 기점이라고 볼 수 있는 갑신정변을 진압한 것도 원세개가 지휘한 청군이었다.
중국의 영향력에 대한 도전의 일환으로 시작된 일본군의 조선주둔은 임오군란이 일어났던 1882년 8월부터 시작된다. 당시 일본공사였던 하나부사 요시모토(花房義質)는 육군 보병 1개 대대와 4척의 군함 등 1,200여명의 병력을 이끌고 서울에 침입하여 지금의 충무로2가와 을지로2가 일대에 주둔하며 임오군란으로 인한 피해보상 등을 요구한다. 이로 인해 조·일간에 체결된 제물포 조약 제5조에는 일본공사관에 약간의 경비병력을 둘 수 있도록 하고 1년 후 경비대를 철수할지 여부를 결정하도록 되었다. 하지만 철수의 판단 주체는 조선이 아니라 일본정부였기 때문에 주권국가인 조선은 외국군의 자국주둔에 대해서 어떤 발언권도 행사할 수 없는 한심한 처지로 전락하고 만다.
주둔과 철군을 반복하던 청일 양군은 청일전쟁을 기점으로 일본군이 한반도에 대한 주도권을 장악하게 된다. 이후 일본은 1903년 압록강 하구에 위치한 용암포의 개항문제를 둘러싸고 러시아와 대립하면서 조선의 식민지화에 적극 나서게 된다. 호시탐탐 러시아와의 일전을 노리던 일본은 1904년 1월 21일 조선의 고종황제가 국외중립을 선언하였음에도 이를 묵살하고 2월 9일 러시아와의 개전을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한편 서울에 주둔해 있는 2만 명의 일본군을 배경으로 고종에게 중립화선언을 포기하고 의정서를 작성할 것을 종용한다. 러일전쟁의 승기를 잡은 일본은 1905년에는 을사보호조약, 1910년 한일합방에 이르기까지 조선병탄작업을 하나 둘씩 진행하게 된다. 일본군은 1904년 지금의 조선호텔 부근에 한국주차군 사령부를 설치했고, 1908년 10월에는 용산으로 사령부를 옮겨 오늘날까지 용산은 외국 주둔군의 지휘부가 들어서는 자리가 된다.
이후 한반도는 1945년 해방될 때까지 36년 간의 일제 식민지를 거치게 되었다. 하지만 해방의 기쁨도 잠시였을 뿐, 한반도 이북은 소련군이 이남은 미군이 주둔하여 우리나라에 대한 외국군의 주둔은 해방 후까지 지속된다.

2. 한미상호방위조약....종속과 갈등의 시작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SOFA(한미행정협정)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의 근거한 협정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공산주의의 위협에 대항하는 것을 목적으로 1953년 조인되었고, 1954년 11월 17일 비준·발효되었다.
이 조약에 대한 전통적인 평가는 미국의 대한방위공약을 강화하는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조약의 체결로 한국군의 대미의존은 구조화되었고, 한국군대의 작전통제권은 미군에게 장악된 채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조약을 모태로 해서 1954년 한미합의의사록, 1966년 한미주둔국지위협정(SOFA), 1991년 한미전시지원협정 등이 체결되었다. 이들 조약으로 인해 한·미간의 군사적 불평등성은 법적으로 보장되기에 이른다.
미국은 한국전쟁 발발 이전부터 대소 봉쇄정책을 추진했다. 1949년 4월 결성된 나토(NATO)를 포함하여 1951년의 미·필리핀방위조약, 미일안보조약, 호주·뉴질랜드와의 앤저스동맹, 1954년의 미·대만방위조약 등 공산권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봉쇄정책은 2차대전 후 냉전국면의 흐름을 타고 전세계적으로 결성된다. 특히 1949년 중국의 공산화는 미국으로 하여금 공산주의의 전세계적 팽창에 대한 적극적 대처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한 계기가 된다. 한미상호방위조약도 이런 미국의 일련의 봉쇄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이승만이 휴전을 수용한 대가로 미국이 양보해서 체결되었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주장이었다. 물론 그 당시 이승만의 요구가 매우 강경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한미상호방위조약은 한국의 이해에 따라 결성된 것이 아니라 미국의 대아시아전략 차원에서 고려되고 입안된 미국의 정책이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
미국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함으로써 한반도에 미군이 주둔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고, 유엔군사령부를 통해 한국군대를 통제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1947년 트루먼독트린에서 시작한 공산주의 봉쇄정책을 실행할 수 있는 유력한 수단을 확보할 수 있게 해준 것이다. 소련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권이 몰락한 이후에도 한미상호방위조약과 주한미군은 미국의 세계지배정책의 손과 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은 한미간에 이해가 첨예하게 갈릴 때마다 주한미군을 무기로 한국을 압박했고, 자신들의 정책을 한반도에 관철시킬 수 있는 수단으로 적절히 활용해 오고 있다. 닉슨독트린 이후 1970년대 박정희와 미국 사이의 갈등도 주한미군 철수와 핵을 통한 자주권 확보문제로 인한 갈등이었고, 이번 촛불시위 때와 마찬가지로 한반도 내에 반미감정이 높아질 때마다 워싱턴 정가에서는 주한미군철수를 언급하면서 한국정부에 대한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3.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문제점

한미상호방위조약 제4조는 “상호합의에 의해 미합중국의 육군, 해군과 공군을 대한민국의 영토 내와 그 부근에 배치하는 권리를 대한민국은 이를 허여하고, 미합중국은 이를 수락한다”라고 되어 있다. 이 조항에 따라서 미국은 자신들의 군대를 대한민국 어느 곳에든지 배치할 수 있다. 주한미군의 철수 및 반입 등을 독자적으로 판단할 수 있고, 핵 관련 시설의 배치도 가능하다. 주한미군의 규모나 수준, 부대이동, 작전참여, 훈련실시 등에 대해서 한국정부와 사전에 협의할 수 있는 어떤 의무도 부과하고 있지 않다. 1904년 체결된 한일의정서의 “대일본제국정부는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군사전략상 필요한 지점을 수용할 권리가 있다.”라는 조항과 표현만 달라졌을 뿐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또한 제6조는 “본 조약은 무기한으로 유효하다. 어느 당사국이든지 타 당사국에 통고한 후 1년 후에 본 조약을 종지시킬 수 있다.”고 되어 있다. 1960년 개정된 미일안보조약 같은 경우 매 10년마다 갱신하는 것으로 되어있는 점과 비교할 때, 이 조약이 얼마나 불평등하게 체결됐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미·필리핀상호방위조약이나 구소련과 북한의 조약 또한 모두 종료시점을 명시하고 있다. 종료시점을 명시하면 재협상시 국민의 의견과 국제정세를 고려하여 조약을 변경하는 등 새로운 조치를 취할 수 있다. 협정에서 이 점이 간과된 것은 대표적인 맹점이라 할 수 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에도 실질적인 걸림돌로 작용한다. 1950년 7월 체결된 휴전협정 제4조60항은 “한국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보장하기 위하여 쌍방 군사령관은 쌍방 당사 정부에 휴전협정이 조인되고 발효된 지 3개월 이내에 각기 대표를 파견하여 쌍방의 한 급 높은 정치회담을 소집하고 한국으로부터의 모든 외국군대철수와 한국문제의 평화적 해결 등의 문제를 협의할 것을 건의한다.”라고 되어있다. 하지만 휴전협정 채 3개월도 지나기 이전인 1953년 10월에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되면서 전후 평화협정체결은 논란만 남기고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4. 한미행정협정(SOFA) 무엇이 문제인가?

한미행정정협정의 정식명칭은 “대한민국과 아메리카합중국간의 상호방위조약 제4조에 의한 시설과 구역 및 대한민국에서의 합중국 군대의 지위에 관한 협정”(Agreement under Article 4 of the Mutual Defense Treaty between the Republic of Korea and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Regarding Facilities and Areas and the States of United Armed Forces in the Republic of Korea)으로 약칭 SOFA(States of Forces Agreement)협정이라 부른다.
이 협정이 가지는 의의는 상호방위조약에 따라 동맹국내에 주둔하는 외국주둔군은 외부로부터의 무력공격에 대한 공동방위라는 특수한 임무를 원활히 수행하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특권을 주둔국내에서 향유하도록 하여 주한미군의 한국 내 법적 지위를 명확히 규정하는 데 있다.
하지만 외국주둔군에게 부여되는 특권 및 면제는 국제관습법상 확립된 것이 아니며 특권 및 면제 등에 관한 주둔군의 법적 지위를 규율하는 동맹국간의 주둔군 지위협정은 주둔군의 성격이나 당사국간의 관계 등에 따라 그 내용이 상이해 진다.
1966년 7월 9일에 체결되고, 1967년 2월 9일 발효된 ‘1966년 협정’은 전문과 31개 조문으로 구성된 협정본문(본협정)과 합의의사록(Agreed Minutes), 합의양해사항(Agreed Understandings), 교환각서(Exchange of Notes)로 이루어진 3개 부속문서로 구성되어 있다. 이후 91년, 2001년 걸쳐 개정협정이 체결됐지만 아직도 많은 한계점을 노출하고 있다.
협정 내용 중 개선되어야 할 점으로 지적되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1)형사관할권
형사관할권 조항에서 미국피의자의 권리를 지나치게 보호해 줌으로써 한국의 사법주권이 침해받고 있다. 형사관할권조항의 개정은 SOFA개정협상의 최대관심사항 중 하나이다. 따라서 평등성, 호혜성, 전면개정 원칙에 따라 우리나라의 사법주권을 회복하는 방향으로 개정되어야 한다.
첫째, 형사관할권이 적용되는 인적범위를 축소하여야 한다. 예컨대 현행 협정은 적용대상을 미군 구성원, 군속 및 그들의 가족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을 'NATO SOFA'와 ‘미-일 SOFA'에서와 같이 ’합중국 군법에 복종하는 모든 자‘로 한정하고, 형사관할권의 인적범위에 초청계약자(제15조8항)를 포함한 전례없는 사항을 삭제해야 한다.
둘째, 접수국의 사법주권을 명백히 침해하는 형사관할권의 제약요소를 삭제하여야 한다. 접수국이 1차적 재판권을 가지고 있는 경우라 하더라도 미군당국의 요청이 있으면 ‘재판권을 행사하는 것이 특히 중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포기하도록 되어있는 조항은 한국의 사법주권을 명백히 침해하는 것이므로 삭제되어야 한다.
셋째, 미국 대표의 입회없이 미군피의자의 예비수사, 수사 또는 재판진행을 불가능하게 하는 조항과 미국 대표의 참여 없는 피의자 또는 피고인 진술의 유죄증거채택을 불가능하게 한 조항을 삭제하고, 미국 군대의 위신에 합당하는 조건이 아니면 심판을 거부할 수 있는 조항, 검찰의 상소권을 제약하는 조항, 혐의를 받고 있는 범죄의 범행 시 또는 제1심 법원의 원판결 선고 시 보다 중한 형을 받지 않을 권리를 규정하여 한국사법부에 대한 침해와 불신을 조장한 조항, 기소 후 한국당국의 신문불허, 변호사 출두시까지 신문불허 및 변호사 부재 시 취득한 진술과 증거의 재판과정에서의 불사용, 형집행에 대한 미군측의 특별요청에 대한 충분한 고려 등 미군 피의자의 법적권리를 보호한다는 명목의 과잉 보호조항들은 삭제되어야 한다.
넷째, 미군이 공무 중 한국인을 사상케 하거나 재산피해를 낸 중대사건을 저질렀을 경우 사건현장에 대한 공동접근권, 한국 측 수사당국의 초동수사 참여권, 사건관계자 진술청취권 등을 내용으로 한 공정한 형사사법공조를 위한 구체적인 절차규정을 신설하여야 한다.
다섯째, 공무증명서의 발급주체를 ‘직무와 관련된’ 특정 미군장성으로 한정하고, 공무의 최종판단을 ‘미-일 SOFA'에서와 같이 한국법원에 일임해야 한다.

2)민사청구
민사청구권 조항에서 개정되어야 할 부분은 첫째 우리나라가 아무런 책임이 없더라도 배상금의 25%를 부담하도록 한 규정과, 한미 공동의 책임이거나 책임소재가 불분명한 경우 배상금을 책임비율별로 분담할 수 있도록 조항을 신설하는 것이다. 둘째, 민사소송 및 판결집행에 관한 절차규정도 보완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강제집행 시 미군의 구성원 또는 고용원 등에게 지불되는 급여 및 지불금에 대하여 한국법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압류, 가압류 또는 강제집행의 대상이 되도록 허용되야 한다. 셋째, 미군용차량의 교통사고와 관련하여 미군차량이나 미군, 고용원이 개인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모든 차량에 대해서 보험에 들도록 규정해야 한다.

3)시설과 구역
주한미군기지의 시설과 구역에 관한 조항은 영토주권의 문제와 국민의 재산권보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첫째, 계약기관, 임대료, 재협상 등 미군기지 임대계약 체결규정이 마련되어야 한다. 둘째, 원상회복 및 보상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셋째, ‘미-일 SOFA'와 ’미-필리핀 SOFA'와 같이 미군기지내에 무기 반입 또는 군사작전을 사전에 한국에 통보하는 것을 의무화하고 주한미군과 관련된 정보를 한국정부에 제출하여 미군이 보유하고 있는 무기에 대한 통제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넷째, 과다한 방위비 분담의 근거가 되는 ‘방위비분담특별협정’은 폐지되어야 한다.

4)환경
주한미군과 관련된 환경피해는 심각성이 날로 더해하고 있다. 원상회복에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요됨으로 국가적 차원에서 철저한 대응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첫째, 환경오염피해에 대한 원상회복 및 손해배상 의무조항을 신설하고 원상회복비와 손해배당금의 부담은 ‘오염자부담원칙’에 따라 오염을 유발한 측이 전액 부담해야 한다. 둘째, 미군기지로부터 환경오염피해에 대한 미군당국의 배상의무조항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여 신설해야 한다. 셋째, 환경법규에 대한 적용범위를 신설하여 미군기지도 한국환경법령의 적용을 받도록 하고 환경피해와 관련한 소송이나 판결집행에 대한 구체적인 절차규정을 마련해야 한다.

5)동식물 검역
‘독일보충협정’에서와 같이 인간이나 동·식물에 감염되는 전염병의 예방과 통제에는 ‘한국법규와 절차’가 적용되도록 규정을 신설하고, 군장비에 대해서도 유사한 검역절차가 신설되어야 한다.

6)노무
주한미군에 고용된 근로자들의 근로조건과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현재와 같은 직접고용제에서 간접고용제로 전환하고, 근로자의 노동3권을 침해하는 조항을 개정해야 한다.

7)통관, 관세, 과세 등
통관·관세 및 과세 등의 특혜부여는 주둔군의 임무수행에 필요한 범위 내에서 ‘예외적으로’ 인정하고 영역주권에 따라 영역국 법령을 ‘원칙적으로’ 적용한다는 원칙에 입각해야 한다. 관세특권을 제한하고 세관검사의 강화, 비세출자금기관의 지나친 수익사업에 대한 조세부과, 비세출자금기관을 통한 불법처분의 통제 및 비자격자의 이용 제한, 특혜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구체적인 과세요건 명시, 슬롯머신과 같은 지나친 수익사업에 대해서는 한국정부가 조세를 부과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8)영어본 우선
SOFA의 협정문은 한국어와 영어로 두 개의 정본을 작성하되 해석상의 차이가 있을 때에는 영어본을 우선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이것은 어느 나라 협정에도 유례가 없는 것이므로 삭제하고, 양 정본을 동등하게 인정하도록 개정해야 한다.

5. SOFA 개정의 원칙

SOFA협정이 개정되어야 하는 원칙 중 첫 번째 고려사항은 이 협정이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불평등조약이라는 점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형사관할, 민사청구, 시설·기지, 노무, 통관·관세·조세상의 특혜 등에서 지나치게 미국 편향적으로 규정되어 있다는 점이 지적된다. 또한 ‘한-미 SOFA'는 ’미-일 SOFA', 'NATO SOFA', '독일보충협정‘의 조항에 비해 매우 불평등하게 구성되어 있다. 2차대전 패전국이요 전범국가인 일본, 독일보다 불평등하게 조약이 체결됐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둘째, 개정안의 내용이 외관적 평등에 그쳐서는 안되고 실질적으로 상호 도움을 줄 수 있는 평등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한-미 SOFA'는 상호호혜적으로 양국의 이해에 합치되어야 한다. 내용이나 운영 면에서 지나치게 미국에 편향되어 개정되어서는 안된다. 여기서 말하는 상호호혜성이란 국가와 국가 사이에 기본적인 관계를 규율하는 원칙으로서의 상호호혜성을 의미하는 것은 물론이다.
마지막으로는 최근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형사관할의 피의자 신병인도시점에만 개정이 집중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미군범죄자의 형사피의자를 한국정부의 사법기관과 수사기관이 제대로 사법관할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문제는 ‘한-미 SOFA'의 문제점 중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SOFA와 더불어 그 전제가 되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이 함께 전면 개정되어야 한다. 현행 ‘한-미 SOFA'의 효력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존재하는 한 ’한-미 SOFA'도 무기한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일본이나 필리핀의 예처럼 10년 혹은 25년마다 협정을 갱신하고, 기지나 시설에 대한 임대도 계약제로 갱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6. 결론에 대신하여

SOFA는 불평등조약임이 분명하다. 그로 인한 폐해도 수없이 많다. 최근 여중생압사사건을 계기로 주한미군의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로 등장했지만, SOFA의 문제점은 이미 오래 전부터 사회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었다. 매향리사격장 문제를 비롯해서 윤금이씨, 전동렬씨 사건, 3천톤씩 방류되는 미군기지 오폐수, 미군기지 주변의 환경오염 등 주한미군으로 인한 물적·정신적 피해는 하나 둘이 아니다. 이로 인해 감수해야만 했던 우리 국민의 고통은 단순한 산술계산만으로는 가늠할 수 없다.
보수언론과 사회 일각에서는 우리 국민의 반미감정이 미국민의 반발을 불러일으켜 한미관계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란 우려를 나타내고 있지만, 이것은 우리 국민의 진의를 왜곡한 것이다. 우리 국민이 맹목적으로 미국을 반대하고, 미국민에 대해서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호혜평등한 관계 속에서 미국과 상호협력방안을 수립하고 과거의 불평등한 관계와 조약 속에서 발생했던 불합리한 측면을 개선하자는 것이다.
한미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제반 문제에 대해 철저한 검증과 토의를 통해 21세기에 걸맞는 양국의 발전적 관계가 정립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상호간의 이해와 타협이 필요하다. 미국도 오만한 태도를 버리고 전향적 자세로 협상에 임해야 하고, 우리 정부도 요구할 것은 요구하고 배려할 것은 배려해 주겠다는 당당한 자세가 필요하다. 냉전시대의 산물인 자유수호 따위의 불필요한 수사는 버리고, 한반도와 동북아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진지한 자세의 인식의 전환이 필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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